2019.8.11 후지산 등반기 in japan

어렸을 적엔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운동부족을 느끼고 그나마 할수있는 운동이 등산이라 취미로 근처 만만한 산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시즈카 신이치의 명작만화 '산' 을 보고 더 등산에 관심이 많아져 일본의 후지산에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나가노현의 일본 알프스에 가보고 싶었지만 여기는 정말 만만치 않을거 같아서) 마침 여름 휴가 때 동생 하준이 후지산 등반 제의를 했고, 내가 찬성하며 후지산행이 성사되게 되었다.

3박 4일 일정으로, 첫날은 각자 볼일을 보고 2일째 오후에 등산을 시작, 다음날 새벽에 일출을 보고 하산하는 일정이었다.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철야 등반이 위험하다는 소리가 있어서 산장에서 잠깐 쉬는것도 검토해보았고, 일출은 포기하고 당일치기로 내려오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후지산 등반이라 일출은 꼭 보고 싶었다. 이제와서 산장 예약도 쉽지 않아서 그냥 철야등반을 하는 걸로 결정을 했다. 일주일 전쯤부터 하필 태풍이 딱 등산할 타이밍에 통과한다는 예보가 떠서 뭐 이리 재수가 없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태풍의 북상 속도가 늦어져서 등반 당일의 날씨는 쾌청했다.

11일 3시쯤 신주쿠에서 하준과 합류해, 4시에 미리 예약해둔 후지산 고고메행 버스를 탔다. 후지산 등반 코스는 대략 4가지가 있는데 우리들은 가장 보편적인 요시다구치 루트를 오를 예정이었다.

버스는 후지큐 하이랜드 등을 지나 후지산으로 들어섰고, 버스 안에서 후지산 전경이 보이자 잠시후 저곳을 오른다는 실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후지산 고고메에 도착한건 7시 정도였는데, 버스에 탈때까지만 해도 8월의 한여름 날씨였는데 내리자마자 쌀쌀한 날씨가 되어 챙겨온 웃옷을 껴입어야만 했다. 등반은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고고메부터가 해발 2300미터쯤 되니 벌써 한라산보다 높은 곳에 있는 셈이다.
기념품가게에 들르고 식당에서 요기도 하고 화장실도 들르며 마지막 준비를 했다. 산소캔이 필수품이라는 소리가 있어서 하나 샀는데.. 솔직히 별 차이는 못느꼈다.

오후 8시경 드디어 등반을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는 정상까지 대략 7~8시간 걸린다는 안내판이 붙어있어 앞으로의 고행길이 예상되었다. 조명이라곤 하나도 없기 때문에 헤드라이트가 필수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꽤나 훤하긴 하지만..


그래도 초반엔 길이 평탄했다. 아래쪽의 도시에서 행사가 있는지 하나비를 쏘고 있었는데, 위쪽에서 보는 하나비는 꽤나 이색적이었다. 어느정도 올라가자 무슨 단체인지는 몰라도 등산기념 팔찌와 나무패 같은걸 나눠줘서 하나씩 챙겼다. 등산길에는 우려했던(?) 한국인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대신 동남아쪽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2시간 정도 올라가자 길이 험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3000미터를 넘는 산 치고는 등산로는 평탄한 편이지만,밤이라 주위가 잘 안보이고 좁은 등산로를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어서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밤이라서 머리 위쪽으로 수많은 등산객들의 조명이 보였는데, 그게 정상 쪽으로 끝도 없이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는 걸 보고 있노라니 숨이 막혀왔다.


그래도 하준과 꾸역꾸역 올라갔다. 나는 처음 경험해보는 고산 등반에다 (하준은 전에 후지산을 한번 오른적이 있었다) 장시간의 등산이라 1시간마다 꼬박꼬박 쉬면서 올라갔다. 7~8고메 근처에 산장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니 나도 저렇게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나는 한국에서 미니 핫브레이크를 들고왔고 하준은 에너지바를 들고 왔는데, 핫브레이크는 별로 안먹었고 에너지바를 많이 먹었다. 


자정을 넘어 9고메에 도달하지 그래도 점점 끝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정상으로 향하는 불빛의 행렬도 더 많아졌다. 오전 3시 드디어 정상에 도착해 하준과 감격의 포옹을 했다.

 

이제 일출이 시작될 5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해가 뜨기 전이라 너무나도 추웠다.. 그래도 여름인데 싶어서 웃옷을 츄리닝 상의만 가져왔는데 이게 완벽한 오산이었다. 혹시 비가 올지 몰라 챙겨왔던 우비까지 꺼내 걸쳤지만 추운건 마찬가지였다.

 


5시까지의 2시간이 20시간 마냥 길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결국 시간이 되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구름이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완벽한 일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떠오르는 해와 더불어 발밑에 펼쳐지는 운해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에 온 것 마냥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말그대로 7시간의 등반과 2시간의 기다림을 보두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햇빛이 비치며 기온도 올라가 이제 좀 살거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들은 인증샷을 찍고 정상의 다른 부분도 보다가 6시쯤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길은 올라올 때보다야 편했지만, 비슷비슷한 길이 계속 이어져 꽤나 지루했다. 흙길이라 여차하면 주루룩 미끄러져 지팡이가 필수였다. 당연히 신발이며 바지도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12시로 예약했던 버스표를 10시 표로 다시 끊었다.


똑같은 길을 3시간 정도 내려오니 올라올 때의 눈에 익은 등산로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간에 말을 탈수 있는 곳이 있어서 말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보였다. 


오전 9시, 후지산 고고메에 도착하며 후지산 등반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내려오자 타이밍 좋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 상관없다.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하산한 사람들이 많아서 화장실 한번 가기도 힘들었다. 10시에 신주쿠행 버스를 타며 후지산을 뒤로 했다.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힘든 길을 함께 해준 하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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